기축통화 붕괴의 역사. 비트코인 탄생까지 (5)
지난 포스팅에서 인플레이션이 극심할 경우에는 제국도 순식간에 소멸시켜 버렸다는 사실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기축통화 붕괴의 역사로부터 실제로 어떤 제국이 이런 일들을 겪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몽골의 사례를 정리합니다.
글의 순서
고대 그리스의 기축통화 붕괴
로마에서 또 발생한 기축통화 붕괴
몽골제국의 붕괴
고대 그리스의 기축통화 붕괴
(1) 고대 그리스의 기축통화
기축통화를 처음 만든 사람은 아테네의 솔론(Solon)이었습니다. 솔론은 고대 그리스 아테나이의 정치가이자 시인이었고, 그리스의 7현인 가운데 한사람으로 꼽힙니다. 솔론은 몰락 귀족 출신의 집정관이었습니다. 아테나 경제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당시 강국이었던 페르시아와의 무역을 증대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역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양국 간의 통화가 자유롭게 교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아테네의 은화를 페르시아의 은화와 같은 무게로 만들었습니다. 기존 은화를 깍아낸 후 무게를 똑같이 맞춤으로써 아테네 은화와 페르시아 은화가 자유롭게 교환될 수 있게 하여 무역을 증대시켰습니다. 아테네 기축통화가 탄생한 것입니다.
(2) 그리스 아테네 기축통화 붕괴 이유
펠레폰네소스 전쟁 때 스파르타와 싸우기 위해 아테네는 용병을 썼습니다. 용병에게는 매달 월급을 지불해야 합니다. 통화 팽창정책을 썼기 때문에 재원이 모자라게 되었습니다. 당시 월급으로 금화를 지불했는데, 금화에 구리를 살짝 섞기 시작했습니다. 구리의 양이 적었을 때는 용병들이 금화를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금화에 구리를 더 많이 섞기 시작했고, 원래 생산해야 할 금화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금화를 생산하게 된 것입니다. 용병들은 금화의 품질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 금화를 거부하게 됩니다. 용병들은 아테네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아테네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졌고, 통화시장은 붕괴되었습니다. 이는 아테네가 망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로마에서 또 발생한 기축통화 붕괴
로마제국의 제5대 황제인 네로 황제 시절, 로마에는 큰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로마는 자신들의 은화에 구리를 섞기 시작했습니다. 화폐 발행량이 늘어났습니다. 후대의 황제들도 네로의 이 방법을 배웠고, 은화에 구리를 섞는 비중을 점점 더 늘렸습니다. 결국 구리의 양이 은화보다 더 많아져서 은전이 동전 색깔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시중에서는 이런 은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통화가치가 떨어졌고, 통화시장이 붕괴되었습니다. 돈이라는 교환의 매체가 없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물물교환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시 사람들이 아무리 물물교환을 하더라도, 도시에서는 식량이 나오지 않습니다. 도시사람들은 도시를 떠나 시골로 향했으며, 시골 영주한테 몸을 맡기게 됩니다. 농노(serf)가 되어 직접 농사짓고 생산을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였고, 고대에 찬란했던 로마 문화가 중세의 장원제도로 바뀌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몽골제국의 붕괴
징기스칸은 빠른 시간내에 원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원제국은 은을 토대로 한 지폐인 교초를 시장에 유통시켰습니다. 원나라는 서양 보다 훨씬 앞서서 지폐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 지폐는 은 본위 제도하에서의 지폐였습니다. 중국에 은이 많았던 이유는 서양과 교역을 하면서 비단, 차, 도자기를 팔고 서양에서 은을 받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은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오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당시 금과 은의 비율에서 서양과 중국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서양에서는 금 1kg이 은 12kg과 교환된 반면, 중국에서는 금 1kg이 은 6kg과 교환되었습니다. 은이 고평가되어 있는 중국으로 은이 밀려오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었습니다. 은본위제도 하에 교초를 쓰게 된 이유입니다.
1270년 몽골제국의 크기는 전 세계 육지 비율의 16.11%가 될 정도였습니다. 로마제국과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땅, 나폴레옹이 정복한 땅을 모두 합친 것만큼의 영토를 갖는 세계 최대의 제국이었습니다. 동쪽 고려부터 서쪽 시리아에 이르기 까지 교초라는 은 본위제의 지폐로 화폐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원나라조차 나중에 통화 팽창정책을 쓰기 시작했고,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습니다. 갖고 있는 은의 양보다 더 많은 양의 지폐를 찍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통화시장이 붕괴되면서 원 제국도 멸망을 맞았습니다.
마치며 …
이번 포스팅에서는 고대 그리스, 로마, 그리고 몽골의 기축통화 붕괴와 제국의 멸망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 사례에서 보시듯 패권적 통화정책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제국도 멸망시킵니다. 통화시장의 붕괴, 시장 마비, 제국 멸망이라는 과정이 공통적입니다. 고대에서 중세로처럼 제국의 멸망뿐만 아니라 시대적 구분을 바꿀 정도로 인플레이션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함께 참고하면 좋은 글
▶ 달러와 신용화폐 시대. 비트코인 탄생까지 (1)
▶ 케인즈와 브레튼 우즈 체제. 비트코인 탄생까지 (2)
▶ 오일머니, 기축통화 달러와 근원물가지수. 비트코인 탄생까지 (3)
▶ 인플레이션 vs. 디플레이션. 비트코인 탄생까지 (4)
▶ 화폐의 역사 : 신용거래부터 가치 저장의 수단까지
▶ 형태로 보는 화폐의 역사
▶ 금융의 미래, 자산 토큰화
▶ 블록체인의 이해 (1) 서버-클라이언트, P2P 시스템
▶ 블록체인의 이해 (2) 서로 다른 세 개의 표현으로 이해하는 블록체인 개념
▶ 블록체인 세상에서 사기 당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단 2가지
참고자료
한국경제TV, [미네르바 클래스] ‘달러’의 독주를 막을 도전자가 나타났다 네 번째 화폐 혁명의 시작|홍익희 작가